주전자의 미학(2)
주전자의 미학(2)
  • 예천신문
  • 승인 2003.10.17 0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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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원하는 대로 때를 따라 필요한 것으로 채워 밥상 위에 오르기도 하고 술상 위에 차려지기도 합니다.
그는 자리다툼도 하지 않습니다. 고관대작들이 출입하는 품위 있는 호텔의 빠나 고급 술집으로 불리는 룸살롱, 서민들이 출입하는 시장 가의 주막이든, 시골 촌부들이 둘러앉은 농막이든, 마을 어귀 성황당 느티나무 밑 돌밭이든, 건축 현장의 막노동꾼의 자리이든, 가리지 않고 누구나 반기며 함께 합니다.

흥겨운 술판이 벌어지는 자리라면 값비싼 양주나 포도주, 값싼 소주나 막걸리를 구별해 담으려 하지도 않습니다. 그의 취향에 맞추는 것이 아니라 손님들의 흥과 취향에 맞출 뿐입니다.

자신보다 상대를 먼저 생각하는 것은 꼭 겸양의 미덕을 갖춘 양반의 형세요 오랜만에 만난 다정한 친구 같습니다. 누구에게나 몸을 맡기는 것이 천해 보이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곱고 아리따운 여인네의 손길로 잡는다 하여 즐거워하고 거친 시골 농부의 손이라 하여 뿌리치지도 않습니다.

인간의 역사와 더불어 고관대작들의 호탕한 웃음과 추태도 보고, 농부들의 한숨 소리와 노동자들의 신음 소리도 듣고, 청춘 남녀의 사랑 이야기도 듣고, 음흉한 사내들의 음담패설과 요염한 아낙네들의 짙은 사랑 이야기도, 하루하루 건축 현장에서 뼈 부서지게 고된 일을 하고 막걸리 잔을 기울이는 막노동꾼들의 애환과 요사스런 사람들의 비밀스런 밀담도 듣지만 그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해서 옮기려 하지 않고, 보았다 해서 본 것을 다 말하려 하지도 않으니 참으로 덕망 있는 옛 선비 같습니다.

그가 들은 것을 다 까발리고 본 것을 다 소문이라도 낸다면 세상이 얼마나 소란하겠습니까?
그가 본 것과 들은 것을 있는 그대로 말해 버린다면 온전할 가정이 어디 있고, 혼란스럽지 않은 사회가 어디 있으며, 선한 모습으로 살아갈 수 있는 인사가 얼마나 되겠습니까? 들었어도 못들은 체 보았어도 못 본체 말이 없는 그로부터 풍겨 나오는 침묵의 가치가 고귀한 인품을 지닌 성자 같습니다.

그가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네가 능청스럽게 거짓을 진실이라고 우기고 사실을 사실이 아니라며 가증스럽게 혀를 놀리는 모습을 보고 얼마나 코웃음치고 있을지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그들의 비밀을 낱낱이 알면서도 말하지 않고 사람들의 양심만을 지켜보는 것은 그야말로 주전자만이 가질 수 있는 미덕이요 미학이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그가 말하지 않음은 듣지 않아 몰라서도 아니요, 보지 않아 기억하지 못함도 아닌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가 입을 다물고 있는 것은 다만 침묵하는 것이 분쟁을 일으키지 않고 평화를 가져다 줄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요, 사람들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그의 침묵은 값진 황금이요 보석이요, 진주인 것입니다.

주전자!
그는 겸손히 나누어주는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습니다. 속이 비워지면 가득 채우기를 원하고 채워지면 나눠주기를 원하는 것이 그의 본성입니다. 나눠 줄 때는 그냥 나눠주지 않습니다.
빈 잔이 가득 채워질 때까지 뱃속에 담겨진 것을 토하고 끝내는 방울 방울 떨어뜨려 남김없이 주는 갸륵한 마음씨는 순박하고 아리따운 시골 처녀 심성을 보는 것 같습니다. 나눠 줄 때면 다소곳이 고개를 숙이고 쪼르르 소리를 내며 나눠주는 모습이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최성규, 서울남부경찰서 경무과 경사, 개포면 우감2리 출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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