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하는 삶'
'함께 하는 삶'
  • 예천신문
  • 승인 2004.10.22 1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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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보기 좋습니다.”
뜻밖이다. 내가 갖고 있는 것은 소나무 삭정이 다발이다. 지인 몇 사람과 산행을 하던 중 정상 부근에서 피로를 풀기 위해 쉬고 있다.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으며 사방을 바라보다 조망을 방해하는 소나무에서 삭정이를 꺾어 묶음을 만들어 들고 있다. 모양이 삐뚤삐뚤하여 조금 이상한 것도 있으나 대부분 흔히 볼 수 있는 소나무의 마른 가지들이다.
어릴 적 시골에서 살 때다. 소먹이 풀을 베려 동무들과 들판으로 나갔다가 방천에서 네 잎 클로버를 찾아 헤맨 일이 있다. 동무들은 잘도 찾아 자랑을 하는 데, 내 눈에는 잘 띄지 않는다. 찾기에 지친 나는 클로버 꽃을 한 움큼 뽑아 줄기로 묶어 들고 있었다. 네 잎 클로버 찾기에 정신을 쏟던 동무가 꽃묶음을 보고 보기 좋다며 부러워하던 생각이 난다.
세상에 존재하는 그 무엇으로 새로운 것을 만들기 위해서는 같은 종류든, 다른 종류든, 서로 섞거나 모아야 한다. 혼자는 재창조가 되지 않는다. 지금 들고 있는 소나무 삭정이 다발도, 어릴 적 갖고 있던 클로버 꽃묶음도 하나가 아니라 여러 개 모여 있다.
보기 좋다는 말을 듣고 바라보니 내 눈에도 좀 별스러워 보인다. 이리 저리 돌려보니 시각에 따라 다른 느낌이 들기도 한다. 부근에 있는 다른 소나무를 바라본다. 소나무 마다 삭정이를 지천으로 달고 있다. 지인의 좋다는 말 때문인가 정말 내가 들고 있는 삭정이가 가장 보기가 좋아 보인다.
지난 2002년 한·일 월드컵 경기 때 ‘붉은 악마’의 응원하는 모습이 역동적이고 아름답게 보인 것은 혼자가 아니라 여러 사람이 모여 응원을 했었기 때문이리라. 전국 체전이나 올림픽 경기 때 보았던 마스 게임 역시 참가하는 선수들이 집단으로 체조를 하므로 그 모습이 더욱 웅장하고 아름다울 수 있었다는 생각을 해 본다.
대구우방타워랜드에서 해마다 펼치고 있는 튤립이나 백합, 국화 축제도 꽃 한 송이가 아니라 여러 송이가 집단을 이루므로 그 아름다움이 더욱 돋보이고 있다.
바다에서 볼 수 있는 갈매기도 한 마리가 날아갈 때는 무척 외롭고 처량해 보이나 집단으로 하늘을 나는 모습은 파도와 함께 장관이다. 합창단들이 부르는 노래나 오케스트라의 연주 역시 함께하는 데서 오는 아름다움이 크다고 볼 수 있다.
경상북도에 있는 각급 학교 건물 정면에는 큰 글씨로 ‘더불어 살아가는 정직하고 창의적인 인간 육성’이란 교육 지표가 붙여 있다. 세계화, 지식 정보화 시대로 규정되는 미래 사회에 적응하여 살아갈 인간을 기르기 위해서는, 남과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 심성을 바탕으로 도덕적으로 정직해야 하며, 지적으로는 창의력이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정직은 사회적 신뢰를 회복하기 위한 기본적인 덕목이다. 공동체 생활의 바탕이 되는 신뢰성과 협동심은 정직한 사람으로 인정받을 때 얻을 수 있는 값진 자산이다. 창의력은 생존에 필요한 기초 능력일 뿐만 아니라 기존의 방식을 뛰어넘어 새로운 대안과 발상을 창출하는 능력이다.
더불어 살아간다는 것은 함께 살아가는 것이다. 함께 산다는 것은 단순히 모여 산다는 의미는 아닐 것이다. 상대를 배려하고 자신이 할 일을 스스로 찾아 함으로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삶이다. 서로 편안하고 편리함을 위해 만들어 놓은 규칙이나 질서를 지켜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행복과 만족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 정답게 어울리는 삶의 모습은 아름답다. 손에 들고 있는 삭정이 묶음 속에 있는 마른 가지들은 서열이 없고, 높낮이가 없고 오만과 불손함이 없다. 평화와 평안을 가지고 서로 평등하며 존중하고 있을 뿐이다.
별다른 가치도, 생명도 없는 소나무 삭정이 몇 개를 한 묶음으로 다발을 지우니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낱개로 있을 때와 묶음 속에서의 역할을 달리 하고 있음을 찾을 수 있다. 옆에 있는 삭정이들과 함께 ‘참 보기 좋다’는 찬사를 들을 정도로 서로 어울려 또 다른 가치를 새록새록 발휘하고 있다.
사람들은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려는 사람들보다 낮은 곳으로 내려 가려는 사람을, 함께 해 주는 사람을 사랑하게 되는 것은 아닌지 생각하게 한다.
남보다 앞서 가고, 더 높은 곳만 향하는 사람은 남이 알 수 없는 자신과의 피나는 싸움을 해야 한다. 자신과의 싸움을 한다는 것은 그만큼 인생이 외로울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비록 갖고 있는 능력이 부족하여 남들로부터 부러움이나 존중 받는 위치에 있지 못하더라도, 내가 갖고 있는 능력과 모습 그대로 다른 것들과 함께 섞여 있을 때 의외로 내 존재가 더욱 값어치 있을 수 있음을 깨닫는다.
혼자 있을 때보다 함께 할 때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은 참으로 훌륭한 발견이다.
지금껏 같이 있음에 만족하지 못하고, 다른 것과의 차별화를 위해, 남보다 앞서 가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과 시간을 허비했는지 모른다.
주변 사람들로부터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있음은 더불어 살아가는 삶에 인색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하는 반성을 해 본다.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삶은 함께 하는 삶이다.
인간의 시각으로 볼 때 생명도 없고, 물질적으로 별반 가치도 없는 높은 산꼭대기에 있는 소나무 삭정이도 여러 개가 어울리니 아름다운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함께하는 삶이 얼마나 뜻 깊은 삶인가를 보여 주고 있다.
한 줄기 시원한 바람이 묵정밭처럼 거칠어진 내 마음의 밭을 갈아엎고 있다.

<전상준 씨, 대구문인협회 회원, 고령중학교 교사, 풍양면 출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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