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번호: 6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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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예천신문
  • 승인 1999.11.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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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1 : '묵은 빚을 갚고 싶었다'
호수번호 : 12104
내용 : 빨지 않겠다는 고무 젖 꼭지/작은 입속에다 억지로 밀어넣고/먹지 않겠다는 소 젖을 삼키라고 안달하면서/모질게도 남의 손에 우는 아이 넘겨 주고/담 보퉁이 돌아서 출근길 나설때/넘어 오는 설움을 꿀꺽꿀꺽 삼켰단다.//열 나고 보채는 놈/남의 등에 업혀서/병원 갈 일, 약 먹일 시간 일러 주면서/맡길 손 비는 날엔 이손 저손 구걸해서/하루 해를 넘겼었지.//방긋방긋 웃는 놈/한가하게 눈 맞춤 못 해준 빚/옹알옹알 옹알이/지치고 힘들어서 꼬박꼬박 대꾸 못해 준 빚/퇴근해서 와 보면 지친 얼굴 눈물 범벅,쉰 목소리/가슴은 아린데/못난 애미 또 놓힐까 대롱대롱 매달리며 불안하게 했던 빚/울게 한 빚,/엄마 젖 못 먹인 빚,/떼어 놓고 다닌 빚,/빚, 빚,빚…/두고두고 갚은들 어찌 다 갚을손가?//세월은 흐르고 그 자식 아비되어/안겨 주는 귀한 보배/가슴에 안고보니/빚만 잔뜩 남긴 세월 돌아보게 되는구나./태산 같은 빚 덩이/녹일 기회 닿았으니/부지런히 갚아서 가벼이 해야겠기에/모처럼 기회에 빚을 갚고 싶었다.//부모 인생이 무엇이더냐?/자식 인생이 내 인생이고/자식이 천당이어야 내가 천당일진데/묵은 빚도 갚으면서 천당 체험도 하면서/조금씩조금씩 빚이 갚고 싶었다.//저희가 갚을 차례예요/부모 마음을 헤아릴 줄 아는 자식이 얼마나 될까요?/힘겹게 사랑과 정성으로 이만큼 키워 주셨는데/갚을 빚이 또 남았으려구요./이젠 저희가 천천히 갚아 드려야죠./반듯하게 키워 놓으셨으니 이젠 더 이상 미안해 하지 마시고/가슴 속에 담아 두지도 마세요.//철무지 자식이 부모가 되어/부모 노릇도 제대로 할 줄 모르면서 키우겠다니/걱정도 많으시고 불안하시죠?/어머님께서 어머님 생활 잠시 접으시고/강희를 키워주시겠다고 하셨을 때 감사했었어요.//종일 강희를 돌보신 날엔 밤이면 힘겨워 하시는 모습이나/팔에 붙이신 파스며 병원 다녀오셨다는 이야기 들을 때마다/가슴이 무척 아팠습니다./또한 젖병을 물지 않으려고 뿌리치고/잠결에 배고픔에 지쳐 어쩔 수 없이 무의식중에/급하게 분유를 들이키는 모습을 볼 때마다/더더욱 가슴이 아팠습니다./어머님과 강희에게 너무 큰 죄를 짓는 것 같아서요./또 강희 아빠가 어렸을 때 잔병이 많았다고 해서/모유를 먹일 수 있을 때까지 먹여셔/건강하게 키우고 싶었어요./경제적으로 조금 힘겹겠지만/아껴 쓰면 되고/강희를 건강하게 키우는 것이 장기적인 투자라 생각했습니다.//강희 아빠도 이젠 안정된 생활을 하고 있고,/저도 휴직이 된다니/더 이상 고민할 일이 없겠더라구요./좀 늦게 결심은 했지만/주변에서 모두들 선택 잘 했다고들 하구요. 앞으로 남은 일은 강희를 건강하고 바르게 키우는 일에 전념할게요./어머님께서도 지켜봐 주시고/언제든 좋은 육아 정보 있으시면 가르쳐 주시고/조언 부탁드려요.//연숙아, 고맙다./휴직을 결정했다니 정말 고맙다./살면서 돌아보니 자식에게 투자하는것이 가장 확실하고 보람있는 투자라는걸 알게 되더라./그러면서 늘 내가 한 투자가 부족 했음을 후회하게 되더라./후회할 때는 이미 지나간 세월이 되어서 가슴을 아리게 하더구나./이러지도 저러지도 못 하면서 부모에게도 자식에게도 빚만 지고 살았던 세월을/너희들이 답습 할까봐 걱정했었다./지혜로운 선택을 한 너가 고맙다./네가 복을 안고 와서, 너희들 일이 잘 풀리더니/우리 강희가 희망과 기쁨을 선사 하더니/휴직건 또한 잘 해결이 되어서/정말 감사한 마음이다./정말 고맙다.//내가 팔이 아픈건 강희 때문이 아니다./워낙 손목이 부실해서 너를 편치 않게 했구나./난 강희 때문에 힌드는 것 없고 오히려 얻는것이 얼마인지 계산 할 수 없을 정도다./갱년기에 찾아오는 우울증엔 최고의 명약이 손주 봐 주는 일이라고 요즘 이기적인 세상 할머니들께 큰 소리로 알리고 싶다./강희만 보고 있으면 눈가에는 웃음을 가득담고/입에서는 나도 몰래 동요곡을 흥얼흥얼/무기력도, 지치는 일도, 힘든 일도 전혀 없이/오히려 생활에 활력소를 얻고 있단다./미운 마음, 그득한 욕심들을 마음에 담아 둘 틈이 없구나./생긋생긋, 옹알옹알,으앙하고 우는것도/그 모습이 부처요,천사로구나./마음 공부 따로 없고, 극락정토 따로 없어/손자 보면서 마음공부,극락 체험 만끽하고 있단다./난 요즘 아주아주 즐겁고 행복하게 지내고 있으니/너, 나한테 미안하게 생각할것 없다./내가 너 한테 고마울뿐이다.

<변혜영, 용문초등 37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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