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실루엣'
'여행의 실루엣'
  • 예천신문
  • 승인 2005.11.24 1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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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9월, 오랫동안 돈을 모아 여고 동창생끼리 동유럽으로 여행을 갔었다.
  아름다운 체코 프라하, 맑고 푸른 다뉴브 강이 흐르는 헝가리 부다페스트, 폴란드에서 유태인을 학살했던 소름끼치는 아우슈피츠와 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소금광산. 독일에서 그림같은 백조의 성과 괴테가 파우스트를 구상하며 걸었다는 산책길, 역사적인 베를린장벽을 관광하며 즐거운 나날을 보냈다. 그래도 우리 여행의 가장 하일라이트는 오스트리아 빈이었다.
 사운드 오브 뮤직의 배경도시인 아름다운 짤츠 부르크와 2000m의 산들 사이로 76개의 호수가 어우러진 잊을 수 없는 짤즈 캄머굿에서 유람선을 탔던 일, 함부르크왕가의 여름별장인 쉔부른 궁전의 멋진 정원, 세계적인 음악과 예술의 도시에서 모차르트 초코렛을 먹으며 꿈꾸던 유럽의 가을을 마음껏 즐겼다.
  그러나 그보다 더 나를 설레이게 한 것은 여고친구 숙녀와의 만남이었다.

  국제결혼을 하여 3남매를 둔 그 친구는 빈에서 대단한 명사로 성공적인 삶을 살고 있었다.
  공식직함은 쉔부른 뮤직 컨설팅회장으로 바쁜 일정을 뒤로 미루고 비엔나 어느 쇼핑 센타로 우리를 찾아와 감격의 상봉이 이루어졌다.
  그 친구는 레스토랑으로 우리를 안내하더니 왕을 위해 만들었다는 빵과 비엔나 커피를 사주었고 미리 준비한 오페라 티켓을 보여주며 함께 감상하자고 하여 우리는 요한 스트라우스의 박쥐라는 3막극 오페라를 무대가 바로 보이는 자리에 앉아서 관람했다. 영화에서나 보던 화려한 왈츠를 직접 보니 마치 꿈만 같았다. 친구의 성공은 참으로 우리를 즐겁게 했다.
  10시 반에 예약해 놓은 한식집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던 친구의 아들이랑 예비 며느리와 함께 해물파전, 된장찌개, 동태찌개를 먹으며 한국인냥 수다를 떨며 행복해 했다.
  밤 1시가 넘은 시각에 친구가 사는 집과 사무실을 둘러보면서 그 친구가 얼마나 열정적으로 삶을 사랑하며 살고 있는지 느낄 수 있었다. 2008년까지 빽빽히 짜여진 스케줄과 세계 음악인들을 키운다는 기숙사를 바라보며 나는 나도 모르게 눈물이 핑 돌았다. 그동안의 수고와 노력이 떠오르면서 새삼 그녀가 자랑스럽고 존경스러웠다.
  내가 `너 정말 대단하구나. '하고 감탄을 하니 그 친구는 웃으며 `내가 보수적인 서양세계에서 이 자리까지 오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 아니? 남이 10시간 일할 때 나는 20시간 일 한다는 각오로 뛰었어. 그리고 내가 한국에서 25년, 오스트리아에서 30년 살았는데 두나라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얼까 생각하다가 프란체스카 여사를 생각하게 되었단다. 대한민국 초대 영부인이 사실은 비엔나 사람이야. 한국에서는 호주댁이라 불리지만. 그래서 오랫동안 자료를 찾아 프란체스카 리 스토리란 책을 출간하게 되었어. 내가 직접 쓰진 않았지만 10월 31일 서울에서 한국어 판이 나와.  나도 스케줄 다 취소하고 서울에 가려고 해.  곧 독일어판도 나오고 오페라를 만들어 비엔나 무대에 제일 먼저 세우려고 해. 세계 최고의 작곡가를 선택해서 곡을 만들려고 준비하고 있어. 그러면 세계사람들이 모두 주목하게 될거야. 한번 기대해 봐.'
  그녀는 위대한 한국인이었고 예천여고인이었다. 나는 이제 내가 그녀의 친구라는 게 너무너무 자랑스러웠다. 그리고 친구는 헤어질 때 나를 안으며 속삭였다.
  `명희야, 앞으로 우리 좋은 일 많이 하자.'
  여행이란 참으로 많은 걸 느끼고 생각하게 하는 것 같다.
  여행이 끝난 지금도 나는 문득 그 때가 떠오르면 가슴이 두근거린다.
  그리고 나도 한번 뿐인 내 삶을 스스로를 위한 참된 삶에 기꺼이 자신을 바치고 싶다는 충동에 사로잡힌다.
 내게서 저 멀리 있던 프란체스카여사의 삶! 국경도 나이도 가난도 초월한 사랑!

 유럽에서 태어나 나라잃은 독립투사 이승만 박사를 만나 사랑 때문에 한국여성으로 살았던 한 여인의 삶이 재조명된다니 감격스럽기만 하다.
  또 그 일을 한국에서 태어나 오스트리아 여인으로 살고 있는 내 친구 숙녀가 하고 있다는 사실이 뿌듯하고 장하기만 하다.
  여행은 결코 시간낭비가 아닌 풍요로운 삶을 위한 충전의 기회이고 우리네 삶은 아름답고 가치로울 때 역시 빛이 나나보다.

<이명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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