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금당실 종소리'를 울리나!
누가 '금당실 종소리'를 울리나!
  • 예천신문
  • 승인 2005.12.21 15:2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딸랑 딸랑∼” 겨울이면 어김없이 들려오는 구세군 종소리가 우리의 발걸음을 멈추게 하고, 얼마 안 남은 성탄절 캐럴송이 나오는 계절이다. 구세군 종소리를 들으며 마음속에 아직도 그 여운이 남아 있는 듯 한 ‘종소리’에 대한 기억이다. 코 흘리게 시절 난생 처음 배움의 터전인 학교에 입학하여 배운 노래가 “학교 종이 땡땡땡…”이다. 이 종소리가 들리면 운동장에서 뛰놀던 학동(學童)들은 천진난만한 놀이의 아쉬움을 뒤로한 채 모두 교실로 들어가 책상에 다소곳이 앉는다.
  여느 지방이든지 절간에나 예배당에는 종이 있다. 경북 예천 속칭 금당실에는 유서 깊은 금곡교회가 있다. 1900년경 설립되었으니 경북에서 손꼽힐 정도로 일찍이 생긴 예천기독교의 시원(始原)이고 성지인 셈이다. 그 교회에는 고(故) 김상진(金相鎭)선생이 일제시대 신사참배거부운동을 주도해 교회예배당이 폐쇄되고 종을 강탈당한 항일(抗日)의 정기, 순교 의지가 서린 종이 있다. 예천군 당국이 보존 관리할 가치가 있는 근대의 유형문화유산이다.
  이 종은 예배를 알리는 신호음이다. 하지만 단순한 기계음에 머물지 않는다. 타종 직후 탕! 하고 1초 정도 나는 타격음에 이어 수초 동안 계속되는 고음성분으로 골골에서 종소리가 들린다. 마지막 타격 후 20 여 초 간 이어지는 소리, 여음이다. 미각적 깊이가 있고 자기를 성찰케 하는 여운이다. 종소리는 음악적임은 물론이고 심미적 정서적인 효과까지 내는 깊고 맑은 지혜가 작동하는 신음(神音)이라 할 수 있다. 세상의 번뇌에 묶여서 이리저리 흐트러진 마음을 추스르고 고요하게 가라 앉히면서 인간의 마음을 영혼의 중심에 모이게 하는 느낌을 받는다.
  수평적으로는 온 마을에 수직적으로는 하늘과 땅이 만나고 하나 되도록 하는 기원이 압축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또 어머니의 품안보다 그윽하고 안온(安溫)한 소리이다. 헤겔(F.Hegel)이 ‘이성의 간지(奸智)’를 말했지만 그 이성마저도 교란시킬 정도로 고음과 빠른 소리를 내는 현대의 어떤 소리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아름다운 소리이다. 고단한 삶을 씨름하듯이 부대끼며 살아가는 이들을 어루만지는 낙심(樂心)의 소리이다.
  변변한 음악이 없던 시절 금당실 종소리는 음악의 역할을 톡톡히 했다. 절간에 종소리는 산속에 있어 잘 들리지 않지만 마을에 있는 교회 종소리는 우리네 삶과 함께한 생활의 일부였다. 그 종은 혼자이지만 종의 추로 좌우날개를 치기 때문에 독창이 아닌 합창의 화음(和音)을 내며 모든 이에게 공평하게 울린다.
  저녘 종소리는 들녘의 농부에겐 노동이 끝나는 시간이고, 새벽 종소리는 권학(勸學)의 메시지였다. 지역민들에게 역사의 혼, 민족의 혼을 깨웠으며 나라 잃은 슬픔에 젖어 있던 뜻있는 사람의 심금을 울렸으리라. 금당실 종소리는 광기(狂氣)와 선동(煽動)의 소리가 난무하는 요즈음 더욱 그리운 종소리이다.
  6,70년대 민주주의의 향도 고(故) 함석헌 선생은 `씨알의 소리’로 민주의 정신을 일깨웠고, 세례 요한은 “주의 길을 곧게 하려고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라며 오늘날 중동지역의 영성(Spirit)을 뒤흔들었다. 이 나라 이 시대는 요한의 외침도 함석헌의 씨알의 소리도 없다. 여야가, 지역과 지역이, 잘 난자와 못 난자가, 있는 자와 없는 자가 충돌하면서 내는 마찰음만 들린다. 미몽 속에 있는 뭇사람을 일깨우고 잠든 정신을 흔들 위대한 희망의 종소리를 누군가는 새롭게 울려야 한다. 그리고 들려져야 한다.

<김정모 영남대 겸임교수, 대구일보 논설위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