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 바이칼 여행기'
'몽골, 바이칼 여행기'
  • 예천신문
  • 승인 2006.03.02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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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해 여름, 친구와 함께 몽골을 거쳐 바이칼 시베리아 횡단 열차여행을 한 적이 있었다.
 먼저 몽골의 울란바타르에 들려 몽골 국립 박물관에서 칭기스칸을 만났다. 왕은 인자하게 웃고 있었지만 약 1천년의 시간을 두고 찾아온 나그네들에게 뭔가 말하고 싶은 듯이 보였다. 문득 김종래의 `칭기스칸의 편지'가 생각난다.
 `너무 막막하다고 그래서 포기해야겠다고 생각하지 말라. 나는 목에 칼을 쓰고도 탈출했고 전쟁을 할 때면 언제나 죽음을 무릅쓰고 싸웠고 그래서 마지막에는 반드시 이겼다.
 무슨 말이 더 필요한가? 극도의 절망감과 죽음의 공포가 얼마나 큰 힘을 발휘하는지 아는가? 나는 사랑하는 아내가 납치되었을 때도 아내가 남의 자식을 낳았을 때도 눈을 감지 않았다. 숨죽이는 분노가 더 무섭다는 걸 적은 알지 못했다.
 전쟁에 져서 내 자식과 부하들이 뿔뿔히 흩어져 돌아오지 못하는 참담한 현실 속에서도 나는 절망하지 않고 더 큰 복수를 결심했다. 군사 1백명으로 적군 1만명과 마주쳤을 때도 바위처럼 꿈쩍하지 않았고 어떤 악조건 속에서도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
 나는 죽기도 전에 먼저 죽는 자를 경멸했다. 숨을 쉴 수 있는 한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흘러간 과거에 매달리지 않고 아직 결정되지 않은 미래를 개척해 나갔다. 알고 보니 적은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있었다. 그래서 나는 그 거추장스러운 것들을 깡그리 쓸어버렸다. 나 자신을 극복하자. 나는 징기스칸이 되었다.
 지난 천년(1001∼1999년)을 정리하면서 사람들이 꼽은 가장 중요한 인물은 칭기스칸이라고 한다. 그가 이룩한 개인적인 성취보다는 세계 인류역사에 미친 영향력 때문이라고 한다. 마르코 폴로의 무용담은 콜럼버스의 꿈이 되었고 그 결과는 아메리카 대륙의 발견으로 이어졌다고 한다. 이제 대한민국이 세계의 리더가 되길 원한다면 칭기스칸을 배우면 어떨까? 몽골 울탄바타르에서 이르크츠크 행 국제열차를 타고서도 “나 자신을 극복하자. 나는 칭기스칸이 되었다.” 가 자꾸 뇌리를 스친다.
 나는 어릴 적부터 기차를 좋아했다 멀리서 기적을 울리며 기차가 지나 갈 때면 손을 흔들며 서 있던 기억이 난다. 난 기차 중에서도 완행열차를 좋아했는데 많은 사람들이 내리고 타고 또 내리고 타는 걸 재미있어했다. 내가 이번 패키지 여행을 선택한 것도 그 추억 때문인지도 모른다. 우리가 탄 열차 안은 이층 침대로 된 4인실 칸이었는데 시설은 좀 열악했다. 열차 안에서 처음 만나 24시간을 같이 지내면서 서울에서 온 중등선생님들과 많은 얘기를 나누며 우리는 금방 친하게 되었다.
 사람들은 여행을 하는 목적이 좋은 경치와 새로운 문화를 접하고 배우는 거라 하면서도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새로운 사람과의 만남이라고 하더니 정말 그런 것만 같았다.
 어느 간이역에서 열차가 잠시 설 때 일행 중 누군가가 말했다. 우리 인생도 지금 어느 간이역을 지나고 있는지 모르겠다고 모두들 머리를 끄덕이고 있는데 기차가 다시 움직인다. 내 인생도 지금 이 기차처럼 흔들리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르크츠크에서 자고 바이칼 호수를 향해 전용버스에 올랐다. 이국적인 풍경과 러시아 아이들이 차창 밖으로 보이는데 모두들 인형처럼 너무 예쁘다. 뽀얀 피부에 또렷한 윤곽, 그리고 아가씨들은 어쩌면 그렇게 몸매도 날씬한지 모두들 감탄하며 바라본다.
 태우면 자작자작 소리를 내며 탄다는 자작나무를 닮아서일까? 생각하는데 정말 하얀 피부를 닮은 자작나무 숲이 계속 이어진다.
 어느 사이 차 안에서는 아! 하는 탄성이 쏟아진다. 의사 지바고에 나오는 눈 쌓인 자작나무 숲이 갑자기 눈 앞에 어른거린다.
 너무 아름다워 눈물이 날 것만 같다. 바이칼에 가기 전에 원주민 마을에 도착하여 자작나무 숲을 거닐었다. 무척이나 황홀하다. 문득 이 멋진 날을 내게 선물하신 하나님이 고마워 서 하늘을 본다. 티 없이 맑고 푸른 하늘이 나를 보고 환하게 웃고 있었다.

<이명희· 예천신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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