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훤당 어록석
한훤당 어록석
  • 예천신문
  • 승인 2006.04.27 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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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육계 선배님으로부터 메일 한 통을 받았다. 대구 국채보상공원에 있는 조선 전기 학자인 한훤당 김굉필의 어록석과 시인 박목월의 `사투리'시비, 그리고 활짝 핀 백목련, 붉은 홍매화 사진과 함께 “봄을 노래하기에 다소 이르다 싶으면 벌써 저만큼 가는 것이 봄이라는데 나들이라도 즐기면서 여유 있는 삶이되기를 바란다”는 부탁을 하고 있다.

 사진에 실린 한훤당의 어록석에는 “너희들은 마음에 남을 공경하고 두려워하는 뜻을 가지고 감히 게을리 하는 일이 없도록 하라. 남들이 혹 나를 비방하는 일이 있더라도 절대로 서로 남의 나쁜 점을 드러내어 말하지 말라. 이는 마치 피를 물고 남에게 뿜으려 하면 먼저 그 입을 더럽히는 것과 같은 것이니 마땅히 이를 경계하라”고 되어 있다.

 어제 동창생 모임에서 협조를 잘 하지 않는 친구 하나를 놓고 많은 비방을 했는지라 마음이 편하지 않다. 내 입에서 나온 피가 친구의 옷깃을 적시기 전에 입에 가득 묻어 있을듯하여 더욱 기분이 좋지 않다. 어제는 친구의 귀가 몹시 가려웠을 것이다. 며칠 후면 만나 마음대로 되지 않는 세상살이를 의논하며 술잔을 기울이게 될 친구인지라 마음이 더욱 찝찝하다.

 내 마음이 편하려면 말을 아껴야 할 것 같다. 당사자도 없는 곳에서 상대의 입장은 들어보지도 않고 헐뜯고 있었으니 수양이 덜 되어도 한 참은 덜 된 짓을 했다는 생각이다. 만약 그 자리에 한훤당이 있었다면 나를 어떻게 보았을까 상상만 해도 쥐구멍을 찾고 싶어진다.

 타인에 대한 험담은 한꺼번에 세 사람에게 상처를 준다고 한다. 욕을 먹는 당사자, 욕을 곁에서 들어야 하는 사람, 그리고 험담을 하는 자신이란다. 이 가운데 가장 심하게 상처를 입는 사람은 욕을 하고 있는 자신이라고 한다. 상당히 일리가 있는듯하다. 사실 나는 선배의 메일을 받기 전에도 어제 일이 마음을 짓누르고 있었다.

 말은 인격이라고 한다. 당사자도 없는 곳에서 흠담을 늘어놓은 내가 미워진다. 어제는 내 앞에서 맞장구를 치던 친구가 오늘은 같은 이유로 화살을 내게 꽂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다. 내가 남을 좋게 말하지 않는데 누가 나를 좋게 말하겠는가? 입을 문지르면 입속에 남은 피가 손바닥에 묻어나올 듯하다.

 습관처럼 늘 입에 달고 다니는 말이 부정적이면 매사가 잘 이루어지지 않고, 긍정적이면 무슨 일이든지 잘 된다고 한다. 말을 하기 전 생각을 가다듬고 상대를 배려하는 습관을 가져야겠다. 언제나 밝고 희망적인 말을 하게 되면 정말 그런 일들이 생길 수도 있단다. 내 자신의 변화를 위해서라도 아름다운 말을 많이 해야겠다.

 행복의 가장 기본적인 조건은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한다. 자신을 사랑할 때 남도 나를 사랑한다고 한다. 행복해지기 위해서라도 절대 다른 사람의 험담을 하지 않아야겠다.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고 한다. 내가 한 말이 부메랑이 되어 돌아올 수도 있다는 속담이다.

 아침에 일어나 저녁 잠자리에 들 때까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사람들과 어울려 살아간다. 어울려 사는 삶 속에서 언제나 말을 주고받는다. 가족과 대화하고, 친구와 이야기하며 사회 구성원으로서 말을 하지 않고는 살 수가 없다. 그러기에 생활 속에서 소중한 말들을 선택해 대화를 나누고 싶다. 내 삶 속에 아름다운 말의 열매가 맺히길 바란다.

 꽃봉오리 속으로 스며드는 햇살이 따사롭다. 다가오는 일요일에는 국채보상공원으로 봄 마중을 가 봐야겠다. 봄볕을 가득 받고 있을 한훤당의 어록석에 새겨진 글을 다시 읽으며, 남의 옷을 적시기 위해 내 입을 더럽히는 잘못을 하지 않겠다는 다짐도 하고 싶다. 그리고 봄꽃을 즐기는 마음의 여유도 가져야겠다.

<전상준·풍양면 출생·금성중학교 교사·대구수필가협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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