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천의 꽃길'
'한천의 꽃길'
  • 예천신문
  • 승인 2006.07.06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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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천 꽃길 주변에 여러 종류의 조롱박이 한창 예쁘게 자라고 있습니다.
왜 꽃길에 꽃이 아닌 박을 심었을까, 궁금해 하면서 잠시 즐거운 상상을 해 보았습니다.
주인이 누구인지 모르는 공로(公路)의 예쁜 조롱박, 조금 더 굵어지면 따 가져가고 싶은 충동이 생기고, 그러면 많은 군민들이 양심(良心) 때문에 괴로워 할 테지….
중학생 시절, 건물 일층 복도에는 아무도 보는 이 없는 빵통과 돈통이 놓여 있었습니다. 교장 선생님께서는 조회시간에 ‘많이 먹어라’ ‘돈 안 넣어도 괜찮다’라고 하셨지만 진심인지 의심했습니다.
자식, 손자 같은 우리들에게 빵으로 양심을 심어 주신 안호삼 교장선생님. 그 빵을 먹으며 졸업한 동기들은 거짓말을 잘 못합니다.
만나면 빵 때문에 인생 버렸다고, 거짓말 할 줄 알아야 출세하는데 그게 잘 안된다고 불평하지만 교장선생님을 가장 존경합니다.
만약 저 조롱박으로 우리 군민들이 더 좋은 품성을 갖게 된다면, 아니 어쩌면 잘 모르고 지냈던 양심을 확인 할 수 있는 기회가 된다면….
장발쟝은 굶고 있는 어린 조카들에게 주기 위해 빵을 훔쳐야만 하는 가엾은 한 인간의 양심으로 깊은 감명을 주었고, 민주주의의 아버지라 불리는 루소는 남의 집 하인이던 어린 시절 동갑내기 하녀에게 거짓말 한 것을 일생 가장 후회한다며 참회록을 내 놓았습니다.
이렇게 보면 양심이라는 것은 저 멀리 떨어져 있는 고상한 것이 아닌, 우리들이 즐겨먹는 빵, 거짓말 같은 일상의 작고 사소한 일들 속에 스며 있는 생활 바로 그 자체인가 봅니다.
먼 훗날, 우리의 아이들이 한천 꽃길에서 남 몰래 조롱박 한, 두개 따 가져간 것 때문에 평생 후회하며 올바르게 살아가려고 노력했다고 말한다면 이 얼마나 교육적이고 뜻 깊은 꽃길이 되겠습니까.
많은 사람들이 진정한 교육이란 스스로 부끄러워 할 줄 알도록 만드는 것이라고 했는데, 이 조롱박으로 착한 아이, 지혜로운 고장을 만들 수 있다면, 이 꽃길을 고도의 의도된 ‘양심의 함정’으로 만들어 보고 싶습니다.
역사는 돌고 돈다고 했던가요, 40여년 전 교장선생님께서 가져다 놓은 그 빵의 모습을 오늘 조롱박에서 다시 봅니다. 저 박에서 다음해의 박씨가 나오겠지요.
꽃길에 서서 수줍은 박의 격조(格調)를 느낍니다.

<도용훈 / 예천읍 남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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