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강주막과 삼강나루터
삼강주막과 삼강나루터
  • 예천신문
  • 승인 2006.09.14 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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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사이 구월이다.
절후를 속일 수는 없는지 그토록 덥던 날씨가 이제 제법 선선하다. 절기 하나하나를 겪을 때마다 나는 우리 조상들이 얼마나 슬기롭고 지혜로운가에 대하여 새삼 감탄하게 된다. 위대한 자연을 대하는 겸손한 품성이 그대로 담겨있어 요즘 자연을 대하는 우리의 방자한 태도를 꾸짖는 듯하다.
30년이 넘도록 예천군에서 초등교사로 근무했지만 풍양면과는 인연이 없었는지 한번도 가 볼 기회가 없었다.

그런데 얼마전 해외여행을 갔을 때 서울에 사신다는 어떤 분이 내가 경북 예천에 산다고 하니까 삼강주막을 얘기하면서 혹시 기회가 되면 안내를 부탁한다고 했다. 나는 엉겹결에 대답을 해 놓고는 걱정이 되어 예천에 가면 삼강주막에 꼭 가봐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러던 중 마침 문화원에서 주최하는 향토문화해설 강좌가 있어 참석을 했다가 현장학습으로 삼강주막과 삼강나루터, 삼강강당을 가 보게 되었다. 삼강은 원래 낙동강, 금천, 내성천이 합쳐져 만들어진 곳이다.

그리고 풍양면 삼강은 조선시대 충신 정약포 대감의 고향이기도 하다. 삼강 강당은 약포대감의 셋째아들인 초서의 대가 청풍자가 벼슬도 마다하고 후학을 위해 교육을 하던 곳이라고 했다. 밝게 빛나는 태양, 온갖 초록색으로 덮인 산과 들은 너무나 아름답고 평화로왔다.
지나는 길에 지금은 폐교가 되어버린 삼강 분교를 보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20여년 전 내가 예천군 초등여교사 회장으로 있을 때 오지 학교와 분교에 과자랑 학용품, 여교사들이 손수 만든 장갑과 양말을 전달했더니 삼강분교 2학년에 재학 중이던 정하늬라는 학생이 감사편지를 보내왔다. 그래서 그 해 발간 된 여교사회지 「목화」에 실어준 기억이 난다. 그 여학생도 지금쯤은 성인이 되어 있겠지 하며 혼자 미소지어 본다.

누군가가 삼강주막이라는 소리에 깜짝 놀라 차에서 내려보니 내가 상상했던 것보다도 주막은 훨씬 초라했다. 전에는 할머니 한 분이 계셨다는데 얼마 전에 돌아가셨다고 한다. 주인 없는 주막이라서 그런지 집 주변과 마당에는 잡초가 무성하고 적막감마저 감돌았다. 마당 한쪽에 조용히 서 있던 오래된 회화나무만이 우리를 반갑다는 듯 맞아주었다.
  지친 나그네들이 쉬어가던 작은 마루와 방은 먼지가 뽀얗게 쌓여있고 금방이라도 술상을 들고 나타날 것만 같은 주모도 시커멓고 그을은 부엌도 이젠 역사의 한켠으로 비켜앉아 있는 것 같아 참으로 아쉽고 서글펐다.

삼강나루터에도 가 보았다. 수많은 사람들이 오고 갔을 그곳에서 나는 잠시 상념에 젖어 나룻배를 띄워본다. 그리고 그 나룻배를 타고 삼강을 건너며 하늘을 본다. 어느 사이 나는 김삿갓이 되어 시를 읊는다.
`저물어 한가지에 같이 자던 새/날이 새면 서로 각각 날아가거니/보아라. 인생도 이와 같거늘/무슨 일로 옷깃 적셔 눈물 흘리나.'
왠지 눈물이 난다.
 `이 살아있는 소중한 문화를 우리 후손들에게 계승시키고 보존할 방법은 없을까? 옛 조상들의 생활모습을 미래의 주인공인 우리 아이들에게 또 전 세계 사람들에게 보여준다면 얼마나 가치있는 교육이 되고 멋진 상품이 될까?'하는 생각에 자꾸만 안타까워진다.
문득 캄보디아 앙코르 왓트가 떠오른다. 그 가난한 나라에 세계사람들이 몰려드는 이유가 문화를 보러가는 것이라면 우리도 예전부터 내려오는 우리의 자랑스러운 문화를 보여주고 또 직접 체험하게 한다면 얼마나 큰 자산이 될까?
삼강주막에 해마다 초가지붕을 얹고 마당 한 켠에 장작을 쌓아둔 채 마당쇠가 빗자루로 마당을 쓰노라면 봇짐을 진 나그네들이 하나 둘 모여들고 반겨 맞이하는 주모와 아궁이에 장작불을 지피는 소리, 굴뚝에서 나는 하얀 연기, 여기저기에 앉아 두런두런 얘기꽃을 피우는 나그네들, 어느 새 지어온 밥과 김치, 삼강에서 잡은 물고기 매운탕 한 그릇, 주막집 할머니가 손수 만든 막걸리까지 한잔 걸치고 난 나그네의 흡족한 얼굴을 상상해 본다.
모두가 그리워진다. 그 낭만이, 그 여유로움이, 각박한 생활을 떠나 잠시라도 몸과 마음을 쉬게 할 수 있는 시골 주막! 다시 재현해 보면 안될까?
요즘 솜씨 좋은 주모 구하기도 그렇게 어렵지는 않을텐데 지방자치단체에서 한번 관심을 가져 보면 좋겠다. 그렇게만 되면 나도 주막 마루에 걸터앉아 못 마시는 막걸리 한잔 죽 들이키며 자연의 품속에서 구름처럼 떠도는 외로운 나그네, 나그네가 되고 싶다.

<이명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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